제주도 호텔에 부는 ‘한달살이’ 바람 월 500만원 숙박비에도 카페회원 14만명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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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항공우주호텔 전경
2~3년 전부터 여행업계를 강타한 ‘살아보기’ 바람이 여전히 거세다. 티몬에서 올해 1월부터 2월까지의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난 고객들은 가족·개인 모든 단위에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가족 단위 한 달 살기 여행객은 112% 증가했고 개인 여행객도 143% 증가했다. 여행일수를 기준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기간은 ‘26~31일(48%)’ 이었고 ‘20~25일’이 27%, ‘32~37일’이 12%로 뒤를 이었다. 한달살이는 몇몇 거점 관광지를 짧은 기간 안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돌아오는 여행에서 탈피해 그곳의 분위기와 라이프스타일을 체화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상류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별장과, 귀농에 대한 로망이 섞인 데다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 등 TV 프로그램이 윤활유가 돼 나타난 트렌드다.
한달살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주로 포털 사이트 카페나 커뮤니티를 활용해왔다. 한달살이 숙소에 대한 정보나 후기를 공유하는 카페 ‘제주도 한달 라이프’의 회원은 14만 명을 넘었을 정도다. 여기에 정통 호스피탈리티 산업인 호텔업계가 가세했다. 높은 가격대가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훌륭한 시설과 편의 서비스가 장점이다. 이들이 한달살이 패키지를 내놓게 된 배경을 분석하고 올해 상반기 경쟁적으로 제주 한달살이 패키지를 내놓았거나 계획 중인 호텔 4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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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배순진 씨 가족이 한달간 머물렀던 제주도 숙소 전경<사진제공=배순진 씨>
▶자녀 둔 3040 부부, 은퇴한 5060 노년층
자아 찾는 20대로 고객 구분
#1. 5살 딸을 둔 주부 배순진 씨(38)는 지난해 9월 27일부터 10월 26일까지 한 달을 제주에서 보냈다. 딸 새별이에게 가장 행복한 선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엄마, 아빠와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온 가족이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한 달을 배씨는 잊지 못한다. 아침 7시가 되면 눈을 뜬 아이는 마당에 나가 그림을 그렸고, 사진을 좋아하는 남편은 매일 아침 6시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해안가로 나갔다. 집안에 드러누워 모든 근심을 다 잊었다가도 기운이 돋는 날은 집 주변 오름으로 등산을 다니곤 했다. 아기자기한 제주의 카페들도 두루 섭렵했다. 제주에 온 지 10일째 되던 날 새별이는 돌아가기 싫은 마음에 ‘한달살기 집에 있는 날이 며칠 남았냐’고 물었다.
#2. 김은지(가명·27) 씨는 10개월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지 두 달째 되던 지난 8월 제주도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치열하게 준비해 입사한 만큼 버티려고 했지만 직무가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언젠가는 취업 준비를 다시 해야 할 테지만 당장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각이 복잡해진 그는 ‘딱 한 달만 아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마음으로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하기로 했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매일같이 집 앞 바닷가를 산책하고, 여행 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업계는 한달살이 여행객들을 연령대별로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가장 큰 시장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배 씨 같은 가족 단위 여행객이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한달살이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김 씨 같은 2030 개인 여행객도 있다.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지금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삶의 자세)’와 같은 소비 행태가 유행하면서 이들은 3~4년 전부터 초기 한달살이 여행 열풍을 이끌었다. 비교적 경제력이 약한 이들은 게스트하우스 등에서 무급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소를 제공받거나 6인까지 숙소를 공유하면서 한달살이를 이어간다.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노년층도 서서히 한달살이 패키지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호텔업계가 내 놓은 패키지 상품의 주 이용층이기도 한 이들은 귀농을 꿈을 품었지만 도시의 편리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오랜 기간 만끽하고 싶지만 전원생활의 고단한 노동과 생활환경은 사양한다.
▶안전 우려·편의시설·체험 프로그램은
호텔업계 기회요인
한달살이를 계획하는 여행객들은 숙소를 고르는 데 있어 훨씬 예민해진다. 여행기간이 길다보니 맞지 않는 숙소를 예약했을 때의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이다. 가족단위 한달살이 여행객들에게는 아이들이 큰 변수다. 자녀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자녀들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은지 등에 따라 여행지나 숙소 유형이 크게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무래도 안전이다. 특히 한 달을 오롯이 혼자 보내야 하는 개인 여행객들에게 숙박 시설 자체의 보안이나 주변 치안 수준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 고른 숙소도 쉽게 믿을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직접 시설을 확인하지 못하고 숙소 운영자의 말에만 의지해 예약하기 때문에 ‘막상 가보니 천장이 너무 낮았다거나 수압이 약했다’는 등의 부정적인 후기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말 한국소비자원은 업종 신고 없이 영업하는 제주 한달살기 장기숙박업체가 늘어면서 소비자들의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갖춘 제주 한달살기 장기 숙박업체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50개 업체 중 30개가 관련 법률에 따른 신고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숙박요금, 계약서 작성 여부 등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많았고 예약취소 시 자체 환급규정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부합하는 곳은 1곳에 불과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목마른 여행객들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 고객이나 노년층 여행객들은 자녀들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실내 액티비티나 농촌 체험 등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범죄 걱정 Zero
프리미엄 부대시설 갖춘 호텔에서 한 달 살아보세요
호텔에서의 한달살기는 보안과 방범의 우수성, 일일 객실 점검 및 청소 서비스, 수영장과 피트니스를 비롯한 다양한 부대시설 이용 등의 편의성으로 다른 숙박시설 장기 렌트보다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검증된 기관에서 제공하는 패키지이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호텔 업계 관계자는 “기존 장기 숙박 프로그램의 한계로 지적되던 부분들에서 호텔들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가능성을 봤다”면서 “한달살기 여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호텔들의 다양한 패키지 출시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초부터 지난 겨울까지 제주도 고급 호텔들은 주변 자연 경관, 풍부한 실내외 프로그램, 가성비 등을 특색으로 한 한달살기 패키지를 출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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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치 리조트 실외 수영장
▶ 숨은 제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이하 해비치)는 오는 7월 15일까지 이용 가능한 ‘제주 한 달 살이 패키지’를 지난달 27일 출시했다. 패키지를 이용한 고객은 간단한 취사 시설과 조리도구를 갖춘 리조트의 객실에서 투숙하며 제주 천연 암반수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사우나 등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비치는 제주섬 남동쪽 해안인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숙박시설이나 관광지가 몰려 있는 제주 서부에서 먼 데다 시내로부터 다소 떨어진 남동부 해안에 자리잡고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민속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비치 관계자는 “패키지 출시 전에도 은퇴 전후의 중장년층 고객들로부터 ‘장기 숙박 전용 패키지는 없느냐’는 문의를 다수 받아왔다”며 “장기 체류 여행 트렌드 확산으로 패키지를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패키지는 한 달(30박)뿐 아니라 14박, 21박 선택지도 열어 놨다. 가격은 14박 기준 238만원, 30박 기준 498만원이다.(세금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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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호텔앤리조트가 승선권을 증정하는 요트 ‘제이엠 그랑블루’
▶자녀 둔 3040 고객에 특화,
실내·외 풍부한 프로그램까지 ‘켄싱턴호텔앤리조트’
켄싱턴호텔앤리조트는 오는 4월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를 출시한다. 지난해 8월 중순에서 10월 말까지 선보였던 ‘아이와 함께 제주 한 달 패키지’, 올해 들어 지난 2월 말까지 진행했던 ‘겨울방학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의 성공에 힘입었다.
켄싱턴 호텔에 따르면 ‘아이와 함께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는 단기간에 온전히 제주 곳곳을 누비며 자녀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30~40대 부모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스탠더드 객실에서 29일을 묵으면서 조식뷔페와 해수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부모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키즈 아이템이 구비된 키즈 전용 객실을 마련한 것이 주효했다. 객실 내 안전과 재미를 고려한 ‘디밤비 범퍼 침대’ ‘조이비 패브릭 캐노피’ 등을 마련해 미니 키즈 카페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료 유모차 대여 서비스도 눈에 띄었다.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로망 이태리 명품 유모차 ‘잉글레시나 듀오시스템’과 독일 프리미엄 유아 웨건 ‘시크포베이비 프론토웨건’ 등을 투숙 기간 내 무료로 대여했다. 패키지 가격은 29박 기준 440만원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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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 호텔앤리조트가 한달살이 패키지에서 제공하는 ‘키즈룸’
지난 2월까지는 ‘겨울방학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를 출시해 장기 투숙 열풍을 이어 갔다. 지난해에 비해 실내·실외 프로그램 모두 강화했다. 겨울이라 외출이 꺼려지는 고객들에게는 ‘카페 더 모닝’의 음료(10회), 애프터눈 티세트(1회), 전신 또는 발 마사지 이용권(1회) 등 기회를 제공해 실내에서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랑블루 요트투어 승선권과 탐라승마장 체험권, 최남단체험감귤농장 입장권 등을 제공해 다양한 야외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켄싱턴 관계자는 “지난 겨울 더욱 풍부해진 프로그램으로 준비된 객실은 모두 판매됐다”며 “오는 4월 초부터는 더 업그레이드된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가 출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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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최고
‘글래드 호텔 제주항공우주호텔’
글래드 호텔 ‘제주항공우주호텔’은 저렴한 가격에 고급 호텔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선보이는 ‘제주살기’ 패키지는 7~14일 묵을 고객에게는 하루 당 6만원, 15~29일 머물 경우에는 1박당 5만5000원, 30박 이상 머물 경우 5만원으로 단가가 떨어진다. 한 달을 머물러도 숙박비로 150만원을 지출하면 돼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것이 호텔 측의 설명이다.
제주항공우주호텔은 전 객실이 온돌마루로 돼 있어 독특하면서도 안락한 느낌을 준다. 산방산·오설록 녹차밭·제주항공우주박물권 등 대표적인 제주의 관광지에 가까이 위치했다는 장점도 십분 활용했다.
제주살기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오설록 티뮤지엄 녹차 아이스크림 교환권 2매와 카멜리아힐 입장권 2매가 무료로 제공된다. 숙박 일수에 따라 투숙 기간 중 1회 치킨 교환권도 제공되며 제주관광공사 중문면세점 2만원 할인권도 제공된다. 산방산 탄산온천·성이시돌 목장·제주현대미술관 등 관광지를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G PASS’도 주어진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친환경 딸기 따기 체험, 올레길 등 트레킹 지점까지 편도 셔틀버스 서비스도 제공한다. 제주항공우주호텔 관계자는 지난 15일까지 겨울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호텔이 위치한 지역이 조용해서 힐링하기 좋았다’거나 ‘필요한 일을 최대한 도와주려는 호텔 직원들의 융통성 있는 서비스가 좋았다’는 피드백을 고객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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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셋 제주신화월드 전경
▶야외 발코니 딸린 콘도에서의 한 달
‘서머셋 제주신화월드’
제주 신화역사공원에 위치한 복합리조트 ‘서머셋 제주신화월드’의 한달살이 프로그램은 장기 투숙 고객들을 대상으로 20% 숙박비용을 할인해 주는 프로모션이다. 3개 침실이 딸린 이 호텔의 ‘패밀리 스위트’는 1박당 34만원이며 조식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는 42만원이다. 신화월드는 가족 여행객 및 단체 여행객들에게 특화된 프리미엄 콘도미니엄으로, 전 객실이 여유로운 거실과 3개의 침실, 풀옵션 주방, 야외 발코니 등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고객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다는 설명이다.
지난 1월 우연찮은 기회로 제주신화월드에서 쌍둥이 초등학생 아들과 한달살이를 한 워킹맘 이 모 씨는 “서울의 고급 저택이나 빌라를 제주의 자연 속에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다”며 “특히 널찍한 주방과 6인용 식탁이 구비돼 있어 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국내 유일의 ‘트랜스포머 오토봇 얼라이언스’ 인터랙티브 전시는 신화월드만의 자랑거리다. 서머셋 리조트 앞에 위치한 3층 규모의 체험 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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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오토봇 얼라이언스’ 인터랙티브 전시관 내부
전시는 영화 <트랜스포머>를 주제로 최신 기술을 기반으로 교감을 통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형태다. 각기 다른 주제의 8개 전시관에서 직접 영화의 주인공이 돼 인류를 지키는 여정을 떠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인선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3호 (2019년 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주도 호텔에 부는 ‘한달살이’ 바람 월 500만원 숙박비에도 카페회원 14만명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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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항공우주호텔 전경
2~3년 전부터 여행업계를 강타한 ‘살아보기’ 바람이 여전히 거세다. 티몬에서 올해 1월부터 2월까지의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난 고객들은 가족·개인 모든 단위에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가족 단위 한 달 살기 여행객은 112% 증가했고 개인 여행객도 143% 증가했다. 여행일수를 기준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기간은 ‘26~31일(48%)’ 이었고 ‘20~25일’이 27%, ‘32~37일’이 12%로 뒤를 이었다. 한달살이는 몇몇 거점 관광지를 짧은 기간 안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돌아오는 여행에서 탈피해 그곳의 분위기와 라이프스타일을 체화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상류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별장과, 귀농에 대한 로망이 섞인 데다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 등 TV 프로그램이 윤활유가 돼 나타난 트렌드다.
한달살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주로 포털 사이트 카페나 커뮤니티를 활용해왔다. 한달살이 숙소에 대한 정보나 후기를 공유하는 카페 ‘제주도 한달 라이프’의 회원은 14만 명을 넘었을 정도다. 여기에 정통 호스피탈리티 산업인 호텔업계가 가세했다. 높은 가격대가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훌륭한 시설과 편의 서비스가 장점이다. 이들이 한달살이 패키지를 내놓게 된 배경을 분석하고 올해 상반기 경쟁적으로 제주 한달살이 패키지를 내놓았거나 계획 중인 호텔 4곳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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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배순진 씨 가족이 한달간 머물렀던 제주도 숙소 전경<사진제공=배순진 씨>
▶자녀 둔 3040 부부, 은퇴한 5060 노년층
자아 찾는 20대로 고객 구분
#1. 5살 딸을 둔 주부 배순진 씨(38)는 지난해 9월 27일부터 10월 26일까지 한 달을 제주에서 보냈다. 딸 새별이에게 가장 행복한 선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엄마, 아빠와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온 가족이 오롯이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한 달을 배씨는 잊지 못한다. 아침 7시가 되면 눈을 뜬 아이는 마당에 나가 그림을 그렸고, 사진을 좋아하는 남편은 매일 아침 6시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해안가로 나갔다. 집안에 드러누워 모든 근심을 다 잊었다가도 기운이 돋는 날은 집 주변 오름으로 등산을 다니곤 했다. 아기자기한 제주의 카페들도 두루 섭렵했다. 제주에 온 지 10일째 되던 날 새별이는 돌아가기 싫은 마음에 ‘한달살기 집에 있는 날이 며칠 남았냐’고 물었다.
#2. 김은지(가명·27) 씨는 10개월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지 두 달째 되던 지난 8월 제주도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치열하게 준비해 입사한 만큼 버티려고 했지만 직무가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언젠가는 취업 준비를 다시 해야 할 테지만 당장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각이 복잡해진 그는 ‘딱 한 달만 아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마음으로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하기로 했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매일같이 집 앞 바닷가를 산책하고, 여행 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업계는 한달살이 여행객들을 연령대별로 세 유형으로 구분한다. 가장 큰 시장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배 씨 같은 가족 단위 여행객이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한달살이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김 씨 같은 2030 개인 여행객도 있다.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지금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삶의 자세)’와 같은 소비 행태가 유행하면서 이들은 3~4년 전부터 초기 한달살이 여행 열풍을 이끌었다. 비교적 경제력이 약한 이들은 게스트하우스 등에서 무급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소를 제공받거나 6인까지 숙소를 공유하면서 한달살이를 이어간다.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노년층도 서서히 한달살이 패키지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호텔업계가 내 놓은 패키지 상품의 주 이용층이기도 한 이들은 귀농을 꿈을 품었지만 도시의 편리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오랜 기간 만끽하고 싶지만 전원생활의 고단한 노동과 생활환경은 사양한다.
▶안전 우려·편의시설·체험 프로그램은
호텔업계 기회요인
한달살이를 계획하는 여행객들은 숙소를 고르는 데 있어 훨씬 예민해진다. 여행기간이 길다보니 맞지 않는 숙소를 예약했을 때의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이다. 가족단위 한달살이 여행객들에게는 아이들이 큰 변수다. 자녀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자녀들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은지 등에 따라 여행지나 숙소 유형이 크게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무래도 안전이다. 특히 한 달을 오롯이 혼자 보내야 하는 개인 여행객들에게 숙박 시설 자체의 보안이나 주변 치안 수준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 고른 숙소도 쉽게 믿을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직접 시설을 확인하지 못하고 숙소 운영자의 말에만 의지해 예약하기 때문에 ‘막상 가보니 천장이 너무 낮았다거나 수압이 약했다’는 등의 부정적인 후기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말 한국소비자원은 업종 신고 없이 영업하는 제주 한달살기 장기숙박업체가 늘어면서 소비자들의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갖춘 제주 한달살기 장기 숙박업체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50개 업체 중 30개가 관련 법률에 따른 신고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숙박요금, 계약서 작성 여부 등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많았고 예약취소 시 자체 환급규정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부합하는 곳은 1곳에 불과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목마른 여행객들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 고객이나 노년층 여행객들은 자녀들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실내 액티비티나 농촌 체험 등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범죄 걱정 Zero
프리미엄 부대시설 갖춘 호텔에서 한 달 살아보세요
호텔에서의 한달살기는 보안과 방범의 우수성, 일일 객실 점검 및 청소 서비스, 수영장과 피트니스를 비롯한 다양한 부대시설 이용 등의 편의성으로 다른 숙박시설 장기 렌트보다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검증된 기관에서 제공하는 패키지이기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호텔 업계 관계자는 “기존 장기 숙박 프로그램의 한계로 지적되던 부분들에서 호텔들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가능성을 봤다”면서 “한달살기 여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호텔들의 다양한 패키지 출시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초부터 지난 겨울까지 제주도 고급 호텔들은 주변 자연 경관, 풍부한 실내외 프로그램, 가성비 등을 특색으로 한 한달살기 패키지를 출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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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치 리조트 실외 수영장
▶ 숨은 제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이하 해비치)는 오는 7월 15일까지 이용 가능한 ‘제주 한 달 살이 패키지’를 지난달 27일 출시했다. 패키지를 이용한 고객은 간단한 취사 시설과 조리도구를 갖춘 리조트의 객실에서 투숙하며 제주 천연 암반수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사우나 등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비치는 제주섬 남동쪽 해안인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숙박시설이나 관광지가 몰려 있는 제주 서부에서 먼 데다 시내로부터 다소 떨어진 남동부 해안에 자리잡고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민속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비치 관계자는 “패키지 출시 전에도 은퇴 전후의 중장년층 고객들로부터 ‘장기 숙박 전용 패키지는 없느냐’는 문의를 다수 받아왔다”며 “장기 체류 여행 트렌드 확산으로 패키지를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패키지는 한 달(30박)뿐 아니라 14박, 21박 선택지도 열어 놨다. 가격은 14박 기준 238만원, 30박 기준 498만원이다.(세금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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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호텔앤리조트가 승선권을 증정하는 요트 ‘제이엠 그랑블루’
▶자녀 둔 3040 고객에 특화,
실내·외 풍부한 프로그램까지 ‘켄싱턴호텔앤리조트’
켄싱턴호텔앤리조트는 오는 4월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를 출시한다. 지난해 8월 중순에서 10월 말까지 선보였던 ‘아이와 함께 제주 한 달 패키지’, 올해 들어 지난 2월 말까지 진행했던 ‘겨울방학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의 성공에 힘입었다.
켄싱턴 호텔에 따르면 ‘아이와 함께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는 단기간에 온전히 제주 곳곳을 누비며 자녀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30~40대 부모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스탠더드 객실에서 29일을 묵으면서 조식뷔페와 해수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부모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키즈 아이템이 구비된 키즈 전용 객실을 마련한 것이 주효했다. 객실 내 안전과 재미를 고려한 ‘디밤비 범퍼 침대’ ‘조이비 패브릭 캐노피’ 등을 마련해 미니 키즈 카페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료 유모차 대여 서비스도 눈에 띄었다.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로망 이태리 명품 유모차 ‘잉글레시나 듀오시스템’과 독일 프리미엄 유아 웨건 ‘시크포베이비 프론토웨건’ 등을 투숙 기간 내 무료로 대여했다. 패키지 가격은 29박 기준 440만원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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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 호텔앤리조트가 한달살이 패키지에서 제공하는 ‘키즈룸’
지난 2월까지는 ‘겨울방학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를 출시해 장기 투숙 열풍을 이어 갔다. 지난해에 비해 실내·실외 프로그램 모두 강화했다. 겨울이라 외출이 꺼려지는 고객들에게는 ‘카페 더 모닝’의 음료(10회), 애프터눈 티세트(1회), 전신 또는 발 마사지 이용권(1회) 등 기회를 제공해 실내에서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랑블루 요트투어 승선권과 탐라승마장 체험권, 최남단체험감귤농장 입장권 등을 제공해 다양한 야외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켄싱턴 관계자는 “지난 겨울 더욱 풍부해진 프로그램으로 준비된 객실은 모두 판매됐다”며 “오는 4월 초부터는 더 업그레이드된 제주 한달살기 패키지가 출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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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최고
‘글래드 호텔 제주항공우주호텔’
글래드 호텔 ‘제주항공우주호텔’은 저렴한 가격에 고급 호텔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선보이는 ‘제주살기’ 패키지는 7~14일 묵을 고객에게는 하루 당 6만원, 15~29일 머물 경우에는 1박당 5만5000원, 30박 이상 머물 경우 5만원으로 단가가 떨어진다. 한 달을 머물러도 숙박비로 150만원을 지출하면 돼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것이 호텔 측의 설명이다.
제주항공우주호텔은 전 객실이 온돌마루로 돼 있어 독특하면서도 안락한 느낌을 준다. 산방산·오설록 녹차밭·제주항공우주박물권 등 대표적인 제주의 관광지에 가까이 위치했다는 장점도 십분 활용했다.
제주살기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오설록 티뮤지엄 녹차 아이스크림 교환권 2매와 카멜리아힐 입장권 2매가 무료로 제공된다. 숙박 일수에 따라 투숙 기간 중 1회 치킨 교환권도 제공되며 제주관광공사 중문면세점 2만원 할인권도 제공된다. 산방산 탄산온천·성이시돌 목장·제주현대미술관 등 관광지를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G PASS’도 주어진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친환경 딸기 따기 체험, 올레길 등 트레킹 지점까지 편도 셔틀버스 서비스도 제공한다. 제주항공우주호텔 관계자는 지난 15일까지 겨울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호텔이 위치한 지역이 조용해서 힐링하기 좋았다’거나 ‘필요한 일을 최대한 도와주려는 호텔 직원들의 융통성 있는 서비스가 좋았다’는 피드백을 고객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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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셋 제주신화월드 전경
▶야외 발코니 딸린 콘도에서의 한 달
‘서머셋 제주신화월드’
제주 신화역사공원에 위치한 복합리조트 ‘서머셋 제주신화월드’의 한달살이 프로그램은 장기 투숙 고객들을 대상으로 20% 숙박비용을 할인해 주는 프로모션이다. 3개 침실이 딸린 이 호텔의 ‘패밀리 스위트’는 1박당 34만원이며 조식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는 42만원이다. 신화월드는 가족 여행객 및 단체 여행객들에게 특화된 프리미엄 콘도미니엄으로, 전 객실이 여유로운 거실과 3개의 침실, 풀옵션 주방, 야외 발코니 등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고객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다는 설명이다.
지난 1월 우연찮은 기회로 제주신화월드에서 쌍둥이 초등학생 아들과 한달살이를 한 워킹맘 이 모 씨는 “서울의 고급 저택이나 빌라를 제주의 자연 속에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다”며 “특히 널찍한 주방과 6인용 식탁이 구비돼 있어 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국내 유일의 ‘트랜스포머 오토봇 얼라이언스’ 인터랙티브 전시는 신화월드만의 자랑거리다. 서머셋 리조트 앞에 위치한 3층 규모의 체험 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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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오토봇 얼라이언스’ 인터랙티브 전시관 내부
전시는 영화 <트랜스포머>를 주제로 최신 기술을 기반으로 교감을 통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형태다. 각기 다른 주제의 8개 전시관에서 직접 영화의 주인공이 돼 인류를 지키는 여정을 떠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인선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3호 (2019년 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